이제는…

내 영역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. 난 그 곳에 내 깃대도 꽂고 나름의 땀을 쏟으며 단장도 하였다. 그러나 세월을 거치며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들은 점점 늘어나고 차츰 생경스럽게 변하여 갔다. 그리고 어느 때에 이르러서는 내 헌신을 주장할 아무런 흔적도 그 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. 이제는 돌아서야 할 때인가 보다.

고양이

고양이와의 만남은 신선하고 놀랍다.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신호와 방식으로 내게 대화를 청하곤 한다. 이 미묘한 생명체와의 만남은 딸들과의 조우를 기억하게 한다. 나는 어리숙했고 어설펐지만 내 딸들은 꾸밈없는 웃음과 동작으로 내게 다가온 그런 시절이 있었다. 이제는 시간이 흘러 내게 멀어진 그 날들을 떠올리며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다.

또 그 봄이다.

또 그 봄이 왔다. 내 몸은 세상의 고락에 지쳐 늘어져 있지만 내 감각은 예민하고 날카롭다. 이 계절에는 스치는 작은 바람이라도 내게는 큰 혁명으로 다가온다. 어김없이 꽃가루 알러지가 시작된 것… 심정적으로야 대지의 생명력과는 반가운 조우이련만 유전적으로는 무슨 태고의 갈등이 있었기에 이토록 힘겨운 공존을 이어가는가? 크리넥스 몇 박스와 알러지약 몇 알로 이 계절을 버티는 중이다. 그래도 꽃은…

추석연휴 강화도 장화리 카페와 일몰

추석명절 강화도 양사면 형님네 다녀온 후 귀경길에 교통 혼잡시간대를 피하기 위해 들렀던 작은 카페입니다.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다양한 소품들이 조화롭게 놓여져 있고 무엇보다도 한적하여 네 가족이 오손도손 대화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. 일몰 시간이 가까워 근처의 장화리로 향합니다. 장화리는 긴 산책로가 바다와 마주하고 있어 일몰을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며 사진가에게는 일몰성지와 같은 곳입니다. 많은 사람들이 산책로 데크에 기대어 수평선…

떡국이

집에 고양이 한마리 같이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. 큰 딸아이가 데리고 온 것인데, 이름은 둘째가 오래 살라는 의미로 ‘떡국’으로 지었습니다. 중성화된 삼색 암컷 길고양이인데 마치 사람 손을 많이 탄 녀석처럼 경계심도 없고 붙임성도 있고 얌전하고 말썽도 없어서 짧은 기간에 구성원으로 동화되어 가는 중인데 최근들어 갑작스레 발정이 왔네요. 중성화 표식도 되어 있는데 의아하여 검진을 해보니 어떤 양심없는 수의사가…

산 길

산 속으로 이어진 길에 나를 맡기면 나란 존재는 길 어귀에 남겨지고 나 아닌 누군가가 마냥 이 길을 걷는 듯 합니다.   청량한 바람이 얼굴에 스치우고 감미로운 데시벨의 소음과 하늘거리는 나뭇잎의 손짓 사이 따사로운 햇살은 등 뒤로 쏟아지고…   희게 비워진 영혼, 나는 누군가가 되어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.